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읽고,

숲은 간지러운 걸 어떻게 참지_정은기

 

 

숲은 간지러운 걸 어떻게 참지



고백에 응답하지 않은 것은 당신인데 
어째서 하나도 밉지 않은지

그게 누구였는지
몇 시였는지 
강릉은 여기서 얼마나 먼 바다인지 

온종일 익숙한 목소리만 들린다 
울고 있는, 움켜쥐고 놓지 못하는, 손이 가는 대로 집어 던지는……,

얼굴
내 것이 분명했다

강릉에는 여전히 파도가 있고 
솔밭을 넘지 못하는 바람이 분다

“우리가 안 가 본 곳이 있을까?”

글쎄 그런 곳이 아직 있을까 우리가 함께 가 본 곳만 진짜 바다가 될 텐데

“유치해”

그때부터였다 눈코입이 수시로 자리를 바꾸며 옮겨 다녔다
바람에 지워지는 모래 언덕처럼

나는 왜 나일까 
왜 지금까지 나였을까
앞으로도 쭉 나일 테지만

그래도 어떤 기도는 구름 너머에까지 가닿지 않을까 그곳이 뉴질랜드쯤이면 좋겠다
내 얼굴이 수북하게 쌓이는 곳

“어쩜……”

모든 사랑은 고백을 끝으로 사라진다
강릉에는 여전히 솔밭 속에 머물고 있는 바람이 있을 테고,

“숲은 간지러운 걸 어떻게 참지?”

큭큭,
헤헤,

나는 네가 기꺼이 이 웃음의 화자가 되어 주었으면 했는데……, 

서걱서걱
아직 눈코입이 자리를 잡지 못하고 있다

 

- 『 우리는 적이 되기 전까지만 사랑을 한다 』中